옛날옛날 내가 초등학교에 아직 다닐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.

난 기억하지 못하지만 동생이 기억한다면서 얼마전에 이야기해줬다. 지금 살던 동네에서 좀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는데, 그 서점에서 책을 엄청 많이 사긴 했다. 돈 있으면 가서 서성서성 하다가 한두권 집어들고 오고 그랬으니까. 제일 많이 샀던 건 해문에서 나왔던 작은 빨간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와 같은 판형의 문고판 추리소설들.

보통은 혼자 가는데 그날은 동생 잡고 같이 가자고 했던지 어쨌던지. 여튼 서점에 같이 가서 난 책을 고르고 동생은 구경하고 있었더랜다. 근데 서점 아저씨가 날 기억하고 내가 무슨 책을 사 가는지 다 기억하고 있었나보다. 초딩이 맨날 사람죽고 범인찾는 책 사가니까 기억하기도 쉬웠겠지.

그날도 뭔가 골라서 계산하고 나오려고 하는데, 그 아저씨가 뒤에서 혀를 차며 그러시더란다.

으이그 추리소설 좋아하면 가난하게 사는데. 어린것이 참.. 쯧쯧.


난 저 말을 못 들었던게 분명하다! 들었으면 기억했을꺼니까!
동생이 내가 또 바닥 청소하면서(데굴데굴) 책 읽고 있으려니까,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기억하냐면서 이야기 해줬다. 어린 마음에 동생도 '저 아저씨는 말을 뭐 저런 식으로 하냐'하고 신경질 나서 그걸 기억하고 있었댄다. 속으로 우리언니는 그렇게 가난하게 안 살게 될 꺼야! 뭐 그런 생각을 했었다나 어쨌다나. 잠시 동생 대견.

몇년이 지나서 전해들은 말이라서 꽤 당황스러웠다. 난감하기도 하고.
근데 생각해보니 저 말은.. 아저씨가 아저씨 인생에 대한 이야기인것 같기도 하고. 여러모로 애환이 느껴진다. 그것도 너무 많이!
어려서 저 서점 근처에 다른 서점 하나도 엄청 많이 다녔는데 그 서점 아저씨는 날 보고 속으로 뭐라고 생각했을까 궁금해졌다. 우리 부모님은 또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. 이번 추석에 가서 물어봐야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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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06/10/03 02:54 2006/10/03 02:54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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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1. 보리차  2006/10/03 09:51     댓글주소  수정/삭제  댓글쓰기
    추리소설 좋아하면 가난해진다니 너한테는 보통 저주가 아니군; (어제 아름다운 가게에서 줄줄이 고른 책들도 혹시 다 추리?)
    거만한 책방 주인 - 카게의 경험담.
    어릴 적 대여점에서 주인 아저씨보고 『침묵의 함대』 찾아 달랬는데 아저씨 왈 "그런 지랄같은 책은 없는데" 래더라. (내가 찾는 책마다 그 대여점에 없어서 그랬던 것 같음) 옆에서 듣던 내 친구가 "아저씨 장사 왜 그리 지랄같이 하세요?" 이랬지. '지랄'을 운으로 하는 선비들의 시문답인가; 오고 가는 고운말이여.
    • mysticat  2006/10/03 17:21     댓글주소  수정/삭제
      말이 가진 힘은 영원한가. 어제 고른 책은 이영도 폴라리스랩소디 7,8이랑 분신사바..니까 굳이 분류하자면 추리는 아닐거시야. ㅋㅋ

      아니 뭐 이런 책도 없는 지랄같은 가게가 다 있어! 하고 상을 엎지 그랬니..
      아 정말 나 저 말 안 듣기 다행이지.. 저 위의 일화의 서점 자리가 어제 어떤 건물 지하에 있던 곰팡이 냄새 풀풀 나던 그 서점이었어. 어제 집에 오다가 생각나더라. ㅋㅋ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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